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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전을 다녀온 것은 벌써 석달 가까이 된 일이다.
'몇자 남겨둬야지' 수시로 생각했는데 매번 게으름에 뒤쳐졌다.
찐한 감상문을 남겨놓을 생각보단 후일에 돌이켜볼 몇자가 되길 기대하며,
간만에 풋풋한 포스팅이다.

'생각'을 넘어...

이 자리에 로댕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놓을 생각은 없다.
적당한 정도로 잰 척해선 먹히지도 않을 것, 과감히 생략하고 간다.

다만 굳이 꼬집어 놓고픈 것은 잘 알려진 작품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키면 코흘리개들도 그 포즈를 따라해낼만큼 유명한 작품이지만
정작 이게 왜 멋드러진 작품인가에 대해 명쾌한 해설을 내놓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조각을 형상 그대로의 재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이라면
내가 생각하기에 이 작품은 수작도 못되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그 실물은 초등학교 운동장마다 하나씩 서 있던 청동 모작들보다도 투박하다.

제멋대로 불거진 활배근과 턱을 받힌 육중한 팔,
지옥의 문 위에서 고뇌로 날로 병약해 가는 매끈한 인간은 오간데 없다.
쉼없이 근육을 꿈틀일 듯한 이 짐승남이
누구나 알고있지만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연마한 내 특유의 뚱딴지일지 모르지만,
'생각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은 '역동', '지향'의 극대화된 표현이라는 점에 있다.
육중한 몸을 당장이라도 일으켜 오래된 '생각'에 종지부를 찍을 것만 같은
그 거인의 역동이 로댕이 그린 인간 군상의 정체라 믿는다.

그 것은 100년 전 인물인 로댕이 오늘의 젊음들에 건네는 뜨거운 조언이다.
'생각하기'에 미쳐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어서 그 '생각'들에 종지부를 찍고 일어나 인간의 새 역사를 만들어가라고
쉼없이 부추기는 거장의 예리한 손 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위대한 손가락을 꿈꾸며 함께 길을 가고 있는 모든 친구들에게
로댕전에서 얻는 작은 사색과 용기를 권한다.


2010/06/27 18:30 2010/06/27 18:30

Picnic, 1996

from 01. Sea/movie 2010/05/30 17:30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한동안 그의 영화들로 포스팅해볼까 한다.
짧다막한 공백이었지만 이런저런 생각들, 감정의 일렁임들로 몸과 마음을 심하게 괴롭혔었다.
'그간 그리웠던 것들, 뭔가 시작이 있었다 할 만한 곳을 찾자'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일어났다.

'시작'이라, 이와이 슌지를 그렇게 기억하는 것은
한편 오만이기도 하고, 한편 식상한 일이기도 하다.
내 또래치고 그의 영화 한편 제대로 안봤을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의 영화를 처음 만났던 사춘기 시절에 느꼈던 어떠한 느낌들이
단순히 MTV적 감성에 대한 촌스러운 동경은 아니었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그 '우려'때문에 나는 그의 영화를 수시로 찾아서 다시봤던 편이다.
예전에 느꼈던 그 진득한 감정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 비슷한 것들에 다시 다가섬으로 거칠고 무른 감성으로
회귀하고 싶다는 파렴찮은 욕심이 있었다.

더 없이 어리숙해보이는 일이지만,
그의 영화들을 다시 훑겠다는 선언만으로 가슴이 설렌다.
간간이 추억하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연구하는 유쾌한 작업이 될 듯하다.

아직 담장 위에 머물고 있는, 머물고 싶은 모든 이들에 고함

'질투', 나는 이 영화를 그렇게 기억한다.
나 역시 담장 위가 아니면 살 수 없을 것만 같던 시간이 있었는데,
자아와 세상의 경계, 무한히 아름답고 섬세하던 그 자리에서
나 또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태연하게 젊은 욕망의 우상이 되는 그들에게 몹시 샘이 났다.

의식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늘 내가 여전히 '담장 위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창백한 이성이 무한을 가린다'는 시인 랭보의 말이 지난 젊음의 모토였고
자유가 구원을 담보하리라는 지극한 믿음 또한 지니고 있었다.

글쎄, 지금의 나에게 어느 한쪽에 속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명확히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도 당연한 듯, 그날의 믿음들을 배반한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삶의 가능성, 생각의 벽을 허무는 작업들로 분주한 것을 보면
이와이 슌지와의 결별, 낯선 땅으로의 이륙은 아직 유보된 상태인 것 같다.

아직 담장 위에 머울고 있는, 머물고 싶은 모든 이들.
관계의 연속 가운데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그들과의 만남을 꿈꾸며 산다.
숫자놀음으로 점철된 생의 한복판에서 마음의 일렁임들, 즉흥과 영감이
때론 '나'와 '우리'의 동력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소풍을 앞둔 밤, 그 설레임같은...

영화의 제목마냥 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기다리는 마음은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의 설레임과도 같았다.
강렬한 석양 사이로 부서지는 차라의 까마귀 털,
그 한 장면을 기다리며 나는 일찍부터 가슴조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의 잔영과 겹쳐지는 화면이 거듭되면서 마음이 점점 느긋해졌다.
건조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어느새 완벽한 '담장 위의 인간'이 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능숙하게 이와이 슌지의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그 것은 굵직한 스토리도, 감동적인 메시지도, 현학적인 포장도 아니었다.
돌이켜 훔쳐보고 싶었던 감성의 시절, 번개처럼 머리를 때렸던
그 묘한 느낌은, 아이 시절에 소풍이 그러했듯, 설명과 이해를 필요치 않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형편없다 말하겠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어서 좋은 그런 것(?)이었더랬다.

제목만 바라고 학창시절의 '소풍'을 이 영화에 겹치는 것은
허접한 글을 끄적이는 나로서도 곤란한 일이다.
영화는 내 기억 속 소풍의 상쾌함을 닮은 듯,
그 땐 알지 못했던 현실의 삭막함을 담았고
곧잘 글을 통해 그려보곤 했던 소풍처럼 은유적이고 고상한 듯하면서도
사실은 직관과 맹목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쎄, 아무렴 어떻겠나.
방향을 잃어가는 이 막장리뷰를 소풍에 관한 내 작은 이야기로 맺으려한다.
(사실 이 리뷰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시점으로부터 무려 한 달 전이다.)

정확히 왜그랬었는지 기억 나지 않지만
나는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는 먼 길을 무한정 걸어들어오곤 했었다.
평소같으면 차를 타고도 꽤 걸려야 할 길을
큼직한 물집이 잡히도록 걸었던 것이다.
오늘까지 고민하는 많은 것들이 그 날들에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그 생각들이 오늘에 와서 소용이 되었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길 한 가운데에서 나는 어느때보다도
큼직한 태양이 도시의 마천루 사이를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강렬한 인상을 나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평생에 잊지 않으려는 듯, 사는 쉼없이 기억의 셔터를 눌러댔다.
어른의 키보다도 훌쩍 큰 긴 그림자를 뒤에 늘어뜨린 채
지금은 만날 수 없게 된 누군가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며 걸었던
그 길을 나는 지금도 많이 그리워 하고 있다.

이 영화도 그런 것 같다. 
2010/05/30 17:30 2010/05/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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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 이후 허우 샤오시엔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대만 근현대사 3부작 중 두번째 작품인 이 영화 <희몽인생>은
일제 강점 하의 대만에 특유의 '무신경'한 현미경을 들이 대고 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의 모호한 경계 위에 서있다.
실제 '리 티안루'가 직접 들려주는 당신의 일대기와
관조적인 시선의 허우 샤오시엔 표 '그림'들이 버무려져
'영화'라는 느슨한 결계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어쩐지 영화를 끝낸 막연한 기분은 차라리
2시간 반짜리 진득한 인터뷰 하나를 끝내고 났을 때와 같다.

(상투적인 발상이겠지만)
이러한 점은 인형술사였던 '리 티안루'의 삶과 묘하게 겹쳐진다.
인형극이라는 매개를 통해 '역사'에 코멘트하고
그 역사의 풍랑 한가운데서 개인의 삶을 일궈나가는
리 티안루의 인생(영화)에는 무대(극)와 무대 뒤의 삶(다큐)이 버무려져 있다.

이러한 것들이 단순히 구성상의 묘미를 더한 것을
넘어섰다는 데에 허우 샤오시엔의 특별한 힘이 있다.

허우 샤오시엔은 '민족'이란 이름의 우상을 깨고
우리 삶에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며
그 거대한 흐름 가운데 무력하고, 또 강한 개인들이 어떻게 살아내는지를
더 없이 강렬하게 비춘다.

허우 샤오시엔의 렌즈엔 편견이 없다.
너무 적나라해서 불편한 첫 만남을 갖지만
약간의 인내심으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삶이 지닌
지극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느리고 먼, 그래서 더없이 인간적이고 부족하며 따뜻한
'시선'과의 만남이 봄으로 가는 길목,
황사로 메워진 도시 한가운데 잠시 우두커니 멈춰선
내 젊음에 소소한 깨침과 즐거움을 준다.

2010/03/20 23:52 2010/03/20 23:52